안호영 북한대학원대학교 총장은 지난 2013년 6월부터 2017년 10월까지 4년 5개월간 주미한국대사를 역임했습니다. 한국에선 대통령이 탄핵되고 미국에선 정권이 바뀌는 격변의 시기에, 두 나라를 잇는 외교 최전선에서 가교 역할을 한 인물인데요, 문민정부가 들어선 이후 ‘최장수’ 주미대사라는 기록도 갖고 있습니다.
커트 캠벨과 제이크 설리번, 토니 블링컨, 웬디 셔먼 등 바이든 행정부의 외교안보 핵심 인사들과 그들의 배우자까지 인연이 있는 안호영 총장을 지난 20일 북한대학원대학교에서 만났습니다. 안 총장은 SBS와의 인터뷰 내내 ‘굳건한 한미 동맹을 기반으로 현안을 풀어가야 한다’는 기본 원칙을 강조했습니다. 특히, 미국의 대북 목표는 완전하고 검증 가능하며 불가역적인 비핵화, 즉 CVID라며 한국 정부가 이에 소극적인 인상을 줘선 안 된다고 답했습니다. 또, 미·중 전략적 경쟁하에 놓인 한국이 ‘전략적 모호성’이 아니라 ‘전략적 명백성’을 취해야 한다고 거듭 힘주어 말했습니다. 안 총장과의 인터뷰 전문은 다음과 같습니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사진=게티이미지코리아)
● “미국 대북 목표는 ‘완전한 비핵화’…한국, 소극적 인상 줘선 안 돼”
Q. 바이든 행정부에서의 북미 관계 전망을 여쭙고 싶습니다. 북미 비핵화 협상이, 바이든 행정부에서 진전될 수 있을 것으로 보나요? 그 전망과 그 이유에 대해 말씀 부탁드립니다.
A. 바이든팀의 초점은 협상의 목표가 무엇이 될 건지, 그리고 방식은 뭐가 될 것인지, 그 두 가지가 되겠죠. 목표에 대해선 여태까지 ‘완전하고 검증 가능하며 불가역적인 비핵화’, 즉 CVID를 많이 얘기했습니다. 일부에선 ‘그것보다 더 낮은 단계가 될 수 있겠다’는 소리가 언론에서 나왔는데 저는 그럴 가능성은 없다고 봅니다. CVID보다 낮은 단계가 되는 건 NPT 체제를 흔드는 일이란 말이죠. 그건 결코 그럴 수 없다고 보고, 바이든 팀의 목표는 CVID가 될 거라고 봅니다.
그 목표로 가는 방법이 부시 대통령, 오바마 대통령, 트럼프 대통령 때까지 뭔가 바뀐 듯하면서도 결국 본질은 마찬가지였어요. 본질이 결국 무엇이냐. 대화 통해 해결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다만, 북한이 대화 안 나오니 별 수 없이 제재해야 하는 거 아니냐는 것입니다. 그 두 가지가 계속 연계돼왔단 말이죠. 아주 극단적 방법 가지 않는 한, 결국 이번에도 그런 수준 내에서 방법이 나오지 않겠느냐 생각합니다.
근데 저희가 세 가지를 염두에 둬야할 거 같습니다. 첫째, 우리의 역할입니다. 우리의 역할 대단히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당연히 우리가 제일 큰 당사자이니까 저희 입장이 제일 중요하죠. 근데 바이든팀에는 우리의 역할이 더더욱 중요합니다. 왜냐하면 바이든 대통령이 계속 강조하는 게 미국의 국제적 역할 재현하겠다, 그러기 위해서 동맹과 같이하겠다고 계속 강조한단 말이에요. 그래서 미북 관계에 대해서도 우리 의견을 많이 구할 거라고 생각합니다. 좋은 일이죠. 좋은 일인데 근데 만에 하나, 우리가 비핵화라는 목표에 대해서 ‘미국보다 소극적’이라는 인상을 주게 되면, 그거는 처음 시작하는 과정에서부터 대단히 동맹에게 확신을 저해하는 결과가 되지 않을까 하는 우려가 있습니다. 혹시라도 그런 인상을 줘선 안 되겠습니다.
두 번째는 중국입니다. 결국은 북한이 지금 가장 어렵다고 생각하는 게 유엔 안보리의 대북 제재 다섯 개가 있지 않습니까. 그게 2016년 3월 시작됐는데요. 그때 제가 워싱턴에서 대사로 근무했는데 2270에서부터 시작해서 5개 결의안이 통과됐는데, 결국은 어려운 이유가 북한의 가장 중요한 수출 품목, 가령 석탄과 철광석, 인력 송출 등 수출을 제재하는 거란 말입니다. 북한으로선 대단히 곤란한 제재죠. 그런데 그 당시에 2016년 3월 워싱턴 분석가들은 ‘이거 굉장히 강한 제재인데 어떻게 중국이 동의할 수 있었느냐’, ‘중국이 대북 입장을 바꿨구나’, 그런 인식이 확산됐었어요. 그러면서 몇 년 지나면서 중국의 대북 제재 참여가 많이 이완되지 않았습니까. 그걸 어떻게 복구할지가 되게 중요한 이슈가 될 거예요. 중국도 미국에서 새로운 바이든팀이 출범하니까 그 바이든팀의 출발에 맞춰서 미중 관계를 지금보다는 나은 상황으로 끌고 가고 싶은 욕심이 있지 않겠어요? 그러기 위해서는 중국도 좋은 카드라는 생각을 분명히 하고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미중간에 진전을 이룰 좋은 기회가 왔다고 생각을 합니다.
세 번째, 북한이 그걸 어떻게 인식하고 어떤 조치를 취할지가 제일 중요하죠. 여태까지 실적을 보면 사실은 우려되는 측면도 있습니다. 2009년 오바마 대통령이 처음 집권할 때 2013년 오바마 행정부 2기가 집권할 때, 2017년 트럼프 대통령이 집권할 때 매번 북한이 핵실험, 미사일 실험을 했어요. 이러한 과거의 전력이 있기 때문에 사실 많이 우려되는 측면이 있죠. 그런데 제가 볼 때는 북한 김정은 위원장도 많은 학습 경험을 쌓았을 거라 생각합니다. 이게 도발을 통해서 얻을 게 많지 않다는 학습 경험을 했을 거라 기대해요. 그래서 이번에는 북한도 이 기회를 제대로 좀 활용해서 의미 있는 비핵화의 진전을 이루길 고대하고 있습니다.
● “미·중 사이 전략적 모호성 안 돼…’전략적 명백성’ 택해야”
Q. 중국에 대해서도 말씀하셨는데요. 미·중 갈등은 바이든 행정부에서도 계속될 것이란 분석이 많습니다. 미·중 갈등하에 우리 정부의 스탠스, 어떻게 잡아야 한다고 봅니까?
A. 그게 우리에게 가장 중요한 문제이지 않습니까? 우리가 그동안 이런 표현을 많이 써왔죠. ‘경중안미’라는 표현을요. ‘경제는 중국, 안보는 미국’이라는 건데, 여기에 대해서 중국 내에도 상당히 시니컬한 반응이 많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거기에 대해서 우리 사회의 많은 논객들이 무슨 얘길 하느냐 하면요. ‘전략적 모호성으로 갈 수밖에 없다’, ‘기회 있을 때마다 전략적 모호성을 사용해서 그때그때 상황에 따라서 유리한 걸 할 수밖에 없다’고 말하는데요. 근데 저는 그 ‘전략적 모호성’이라는 게 자충수가 될 가능성이 대단히 높다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미국 입장에서 보자면, 그런 약은 수를 자꾸 쓰게 되면 ‘한국이 중국에 경사돼있다’는 의심이 들 수밖에 없습니다. 동맹의 가장 기초가 상호 신뢰인데, 상호 신뢰를 저해하는 결과가 될 수 있겠고요. 중국에 대해서도 바람직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중국은 한국을 아시아태평양 지역의 미국 동맹 중 가장 약한 고리로 생각한다는 인식이 있잖습니까? 그 인식이 더 강해지겠죠. ‘아 역시, 한국이 가장 약한 고리로구나’ 그런 인식이 강해질 겁니다. 그렇다면 중국은 그 인식을 기반으로 무리한 요구를 계속해올 거고요. 우린 그러한 무리한 요구를 못 받지 않습니까? 그럼 마지막에 못한다는 소리밖에 할 수가 없잖아요. 그렇게 되면 중국도 ‘한국 사람들 신뢰할 사람들 아니다’라는 인상을 받게 되겠죠. 그래서 저는 오히려 모호성으로 갈 문제가 아니라고 생각해요. 오히려 명백하게 우리 입장을 정해야 하는 문제라고 생각하는 거죠.
제가 주미대사로 근무할 때도 미중 간에 그런 이슈 많이 있었죠. 가령 비행정보구역 문제라든가 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 사드 문제 등 미·중 간 미묘한 문제들 많았습니다. 저는 당시에도 미·중에 같은 목소리를 내는 게 대단히 중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가령, 미국에 딴 소리, 중국에 딴 소리, 이렇게 해서는 양쪽의 신뢰를 다 잃는다고, 그래서 명확하게 입장을 밝혀야 한다고 생각을 했죠. 저 스스로도 명확한 입장을 밝히려고 노력했고요. 그 명확한 입장은 지정학적으로 우리가 굉장히 미묘한 위치에 있어서 4강과 다 잘 지내야 하는 것인데, 그 대전제는 우리 국가를 구성하는 기초가 자유민주주의라는 것, 그리고 우리 안보의 기초가 한미안보연맹이라는 겁니다. 이 얘기를 미국에도, 중국에도 해야 합니다. 중국한테 얘기할 때는 ‘너희가 항상 좋아하는 개념이 있지 않느냐. Core national interest, 즉 이건 핵심 국가 이익이어서 양보할 수 없다’고 얘기해야 합니다. 한미안보협약이 바로 그겁니다. 그러나 그러면서도 ‘우리는 기본적으로 중국과 친선관계를 희망한다’ 그렇게 얘기를 해야 합니다. 미국과 중국에 각각 그렇게 해야 합니다. 중국 입장에선, 섭섭해한다면 처음에 섭섭해하는 게 낫지, 나중에 우리가 뭔가 할 수 있다고 얘기했다가 못하면 그때 갖게 되는 실망감은 더 클 수밖에 없어요. 모호성으로 가져갈 문제가 절대 아니라는 겁니다. 이 문제는 명백하게 가야 합니다. 그렇게 저는 생각해왔습니다.
버락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 (사진=게티이미지코리아)
● “오바마, ‘위안부 문제 끔찍한 인권 침해’라 해…韓, 일본에 국제법 위반 빌미 줘선 안 돼”
Q. 오바마 행정부는 지난 2015년 한·일 정부 간에 12·28 ‘위안부’합의가 체결됐을 당시 공식 환영 논평을 낸 바 있습니다. 물밑에서도 이러한 역사 문제의 조속한 해결을 위해 한국의 양보를 촉구 내지는 압박해온 것으로 알고 있는데요. 바이든 행정부에서도 한·미·일 동맹 결집에 걸림돌이 될 수 있는 역사 문제에 있어서, 한국의 양보 또는 조속한 해결 의지를 주문할 거란 분석이 나옵니다. 이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하는지, 우리 정부는 어떻게 대응해야 한다고 생각하는지도 궁금합니다.
A. 두 가지를 생각해야 할 것 같아요. 첫 번째는 미국이 동맹에 부여하는 중요성, 그걸 저희가 잘 알아야 할 것 같아요. 제가 미국에서 오바마 행정부 2기, 4년 동안 계속 있었습니다. 그리고 트럼프 대통령 1년, 초기 1년을 미국에 있었습니다. 즉, 오바마 행정부와 4년을 지냈고 트럼프 행정부와 1년을 지냈죠. 그런데 재밌는 건, 미국 측에서 동맹에 대해서 얘기하는 건 똑같다는 겁니다. 물론 트럼프 대통령은 예외입니다. 그러나 제임스 매티스 미 국방장관의 경우, 취임이 2017년 1월이었는데, 방한을 2017년 2월 초에 했습니다. 매티스 장관이 취임 후 처음 방문한 나라가 한국이었습니다. 매티스 장관은 방한 전 토요일에 저와 저녁을 같이 먹었습니다. 여러 사람과 함께하는 저녁 자리였는데, 매티스 장관은 바로 제 옆자리에서 식사를 하며 2시간 동안 얘기했습니다. 그때 제가 “국방장관이 되자마자 방문하는 외국 국가가 한국인데, 대단히 고맙다”고 얘기했습니다. 그랬더니, 그분이 이렇게 답했는데, 그게 아직까지 생생히 기억납니다. “미국은 동맹 때문에 이렇게 튼튼한 나라가 될 수 있었다. 동맹 때문에 이렇게 잘 사는 나라가 된 거다. 그래서 내가 지금 한국에 가는 건 너무나 당연하다.” 제가 그때 들었던 얘길 아직도 기억합니다.
근데 바이든 대통령이 11월 24일 외교안보팀 각료들을 임명했죠. 외교안보팀 각료들을 임명하면서 매티스 장관의 말과 똑같은 얘기를 했습니다. “미국은 동맹과 함께 할 때 제일 강력하다”고요. 똑같은 얘길 했습니다. 미국 사람들이 동맹에 부여하는 의미, 그 중요성은 공화당, 민주당이 따로 없습니다. 미국 정치가 대단히 혼란스럽다는 얘기들을 하는데요. 적어도 동맹 문제와 미·중 관계, 외교 전반에 대해서는 아주 단단한 그런 게 있다고 생각합니다.
두 번째, 미국 입장에서 보면 대서양 건너 나토가 있고, 태평양 건너 한국과 일본, 호주가 있습니다. 실제로 미국 사람들은 그렇게 얘기합니다. 한국과 일본, 호주를 아시아태평양 지역에서 제일 중요하다고 하는데요. 근데 그 동맹끼리 싸운다면, 미국 입장에선 대단히 우려스러운 사태이겠죠.
물론 제가 주미대사로 있던 동안에도 한·미·일 간에 구심점 역할을 하기 위해서 부단히 노력했습니다. 한·미·일 정상회담도 워싱턴에서 열렸었죠. 당시 바이든 부통령도 참석했었습니다. 당시 정상외교 행사에 부통령이 온 것이었는데, 그건 대단히 이례적이었죠. 그럴 정도로 오바마 대통령도 한·미, 한·미·일 동맹의 개선을 위해 많이 노력했죠.
그 와중에 한·일 간 역사 문제가 어떤 역할을 하느냐. 제가 주미대사로 있었던 2013년~2017년 동안 역사 문제 중 ‘위안부’ 문제가 가장 큰 문제였어요. 근데 미국이 사실은 ‘위안부’ 문제에 관한한 한국의 입장을 굉장히 지지해왔습니다. 제가 2013년 주미대사로 부임해서 제일 먼저 낸시 펠로시 당시 민주당 하원 원내대표를 만나러 갔거든요. 그때 펠로시 의원이 제게 미 의회에서 ‘위안부’ 결의안 통과 시 자기가 한 역할을 얘기했어요. 보람 있는 일이었다고요.
그리고 2014년에 오바마 대통령이 일본을 방문했습니다. 그 후 4월에 한국을 찾았습니다. 그리고 한미 정상회담을 했고, 그 후 기자회견을 했습니다. 당시 오바마 대통령에게 기자가 ‘위안부’ 문제에 대해서 질문을 했습니다. 그에 대해서 오바마 대통령이 뭐라고 답변을 했느냐 하면요. “이것은 끔찍한 인권 침해”라고 했습니다. “아무리 전시 상황이라 해도 충격적인 일”이라고 했습니다. 그 단어들이 얼마나 강한 단어들입니까? 오바마 대통령은 그러면서 “아베 수상도 알 것이다. 일본 국민들도 알 것이다. 이런 문제 해결하기 위해선 사실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게 첫걸음이라는 것을”이라고 했습니다. 아베 수상을 거론하면서 사실로 인정해야 한다고 얘기했습니다.
그런데, 그러한 입장이 낸시 펠로시 의원과 오바마 대통령에게만 해당됐을까요? 그렇지 않았습니다. 미국의 모든 조야가 ‘위안부’ 문제에 대해서 동일한 목소리를 내고 있었습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미국을 보는 여러 가지 시각이 있을 텐데요. 그중 하나가 어떤 원칙, 일반적인 가치를 대단히 중시하는 문화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당시 우리가 어떻게 미국 사람들한테 위안부 문제를 설명했느냐 하면요. 이건 ‘한일 간 역사 문제’이기도 하지만, ‘전시 여성 인권에 대한 문제’라고 미국 사람들 협의에서 그렇게 얘기했습니다. 그래서 미국 사람들이 보기엔 ‘이건 일본이 풀고 가야 할 문제’라는 분명한 의식이 있었던 거죠. 대통령이 됐건, 하원 원내대표가 됐건 말이죠. 그리고 제가 하원 외교위원장, 군사위원장도 자주 만났는데, 그분들도 똑같은 목소리를 냈습니다.
그런데 지금 현재는 다른 역사적 문제들이 있죠. 일본이 그런 역사 문제를 취급하는 걸 잘 보시면 일관되게 하는 얘기가 있습니다. 이게 국제법의 일반 원칙에 위배되는 거라고 하고 있죠. 아베 총리가 됐건, 정부가 됐건 ‘국제법 일반 원칙에 위배되는 것’이라는 메시지를 일관되게 내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한국을 두고 ‘국제법을 안 지키는 나라’라고 하고 있는데요. 제가 볼 때 상당히 미국을 의식한 그런 노력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그 의미를 캐치해서 역습을 해야지, 빌미를 주면 안 됩니다. 국제법을 벗어나거나 그런 빌미를 주면 안 되는 겁니다.
그래서 오바마 행정부에서 한국에 압력을 가하지 않았느냐? 그때 제가 대사입니다. 자신있게 말씀드리는데 그런 압력은 없었습니다. 오히려 ‘위안부’ 문제에 있어서 일본에 압력을 넣었습니다. 그것보다 얼마든지 많은 예가 있습니다. 어떻게 가능했느냐. 일반 원칙이 뒤에 있었으니, 우리 입장이 더 강해질 수 있었거든요. 역사 문제를 다루는 과정에서 일반 원칙을 우리 뒤에 둬야 한다는 겁니다. 그래야 일본에 대해서도 떳떳한 입장을 낼 수 있고, 미국에도 떳떳한 입장을 낼 수 있겠죠. 그러나 우리가 역사 문제에 대해서 명심해야 될 건 또 있습니다. 제가 국회 가면 그런 질문을 많이 받았고, 그때마다 꼭 이렇게 답했습니다. “한·일 간 역사 문제에 있어선 강경하게 대응해야 한다. 그러나 한·일 간에는 그것 말고도 다른 문제들이 있다. 한·일 간 가치를 같이하고, 전략적 목표 같이 하는 협력은 그 협력대로 가야 한다” 이겁니다. 두 사안을 같이 추진해야지, 어느 하나만 해선 안 됩니다. 그런 종합적 시각을 갖고 일반 원칙에 기초해서 대응해 나간다면, 이 문제는 큰 문제가 없을 거라 생각합니다.
커트 캠벨, 제이크 설리번, 토니 블링컨, 웬디 셔먼
● “캠벨, 설리번, 블링컨, 셔먼 모두 ‘동맹파’…동맹 신뢰 저해하는 불필요한 말 삼가야”
Q. 주미대사 시절에 다양한 분들을 폭넓게 만난 걸로 알고 있습니다. 바이든 행정부의 외교안보 인선을 보면 반가운 분들도 많이 있을 것 같은데요. 구체적으로 커트 캠벨이나 설리번, 토니 블링컨, 웬디 셔먼 등과 깊은 연이 있으신가요? 그분들 인선에 대한 평가와 우리 외교정책에 대한 제언도 궁급합니다.
A. 제가 오바마 대통령 임기 4년을 워싱턴에 있는 동안에는, 커트 캠벨, 제이크 설리번, 토니 블링컨, 웬디 셔먼은 현직이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현직만큼 활발한 사람들이었습니다. 아시아그룹이라는 컨설팅펌에 참여하면서, 다 오바마 팀으로 친했으니까요. 그분들 모두 자주 만났습니다. 그리고 그분들의 배우자 분들도 자주 만났습니다. 커트 캠벨 베우자는 제가 처음 봤을 때 미 재무부 국제금융차관이었어요. 그때는 제가 외교부 통상교섭조정관으로 G-20 셰르파를 할 때입니다. 그래서 그 부인을 미 재무부 국제금융차관에서부터 만났습니다. 제가 워싱턴 갔을 때 그분은 연방준비은행 이사가 됐죠.
토니 블링컨 부인은 국무부 차관보를 한 분입니다. 미국의 ECL 부서는 우리한테도 굉장히 중요합니다. 풀브라이트 장학금하는 부서, 그 담당 차관보였습니다. 그분도 제가 잘 알았습니다. 웬디 셔먼의 남편은 저명한 언론인입니다. 저는 당시 웬디 셔먼보다 그 남편을 먼저 만났어요. 제가 워싱턴에 부임했을 때 언론인은 관두고, 다른 회사의 책임 있는 자리에 있었어요. 제이크 설리번은 당시 미혼이었고요.
물론 4명 본인들과 일로 자주 만날 기회가 있었는데요. 4명의 공통점이 있습니다. 첫째, 자기 분야에서 이미 검증되고 또 검증된 전문가 분들이라는 겁니다. 둘째, 동맹을 대단히 중시하는 분들이라는 거고요. 셋째, 아시아에 대해 대단한 조예가 있는 분들이라는 겁니다. 커트 캠벨은 아시아담당차관보했던 분이거든요. 누구보다도 아시아를 잘 아는 분이죠. 그분은 국무부에서 물러나서 컨설팅 펌을 운영했는데 그 펌 이름이 아시아그룹이에요.
웬디 셔먼은 올브라이트 국무장관 때 북한담당조정관을 했고 한국에도 자주 왔습니다. 그래서 그분도 북한을 포함한 아시아를 대단히 잘 아는 사람이고요. 토니 블링컨은 당시 부장관이었습니다. 2015년 2월에, 그도 부장관이 되자마자 처음 온 게 한국이었습니다. 당시 제가 토니 블링컨 부장관을 만나서 “한국에 제일 먼저 가서 고맙다”고 인사하면서 “솔직히 왜 한국에 먼저 갔느냐” 물었습니다. 그랬더니 블링컨 부장관이 “그건 굉장히 쉬운 결정이었다. 왜냐하면 내 ‘올드 보스'(오바마 대통령)가 내게 이렇게 말했다. 국무부에 가면 아시아를 굉장히 잘 챙겨야 한다고. 그리고 내가 국무부에 왔더니, 내 ‘뉴 보스'(존 케리 장관)가 아시아를 잘 챙기라고 했다. 그래서 내가 당연히 아시아를 가야지, 그리고 아시아에서 한국부터 가야지 생각했다”고 말했습니다.
실제로 토니 블링컨 부장관은 한국에 굉장히 자주 왔습니다. 미국 국무부 부장관이라는 자리는 굉장히 바쁜 자리인데도 한국에 자주 왔어요. 그 정도로 그 분야에 있어서 1인자로 알려진 분들이고 동맹을 대단히 중시한 분들입니다. 아시아 잘 아는 분들이고. 이런 분들한테는 정공법으로 나가야죠. ‘아 이걸 적당히 하면 넘어가려나’ 이런 게 통할 수가 없겠죠. 솔직하게, 그리고 신뢰에 기초해서 신뢰를 저버리지 않게 해야죠. 우리가 동맹의 신뢰를 활용해서 뭔가를 하려고 하려면, 우리도 그에 상응하는 신뢰를 보여줘야겠죠.
Q. 그에 상응하는 신뢰, 구체적으로 어떤 걸 의미하나요?
A. 첫째, 히포크라테스 선서입니다. 저는 해보지 않았지 않았지만, 의사가 처음에 환자를 볼 때, 뭘 개선할까 하는 것보다도 자기가 어떤 걸 잘못해서 상황을 나쁘게 만들면 안 된다는 겁니다.
‘Do no harm’, 바로 신뢰를 증진하는 방법은 이 ‘두 노 함’이라고 생각합니다. 이게 굉장히 중요합니다. 왜냐하면, 요즘 얘기 들어보면 동맹의 신뢰를 저해하는 불필요한 얘기를 많이 합니다. 근데 현실성 없는 얘기냐, 제가 볼 때는 아닙니다. 그런 얘길 왜 해서 동맹 신뢰를 저해하느냐는 겁니다. 왜 신뢰가 중요하냐, 동맹이라는 게 뭐냐. 저 사람이 위험에 처했을 때 내 일처럼 가서 도와주는 것입니다. 도와주는 건 희생으로 하는 데 신뢰를 하지 못한다면 누가 내 일처럼 가서 희생합니까?
일각에서는 ‘적당히 하자’는 얘기도 합니다. 미국을 향해서 이런 식의 이야기를 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우린 중국에 대한 무역 의존도도 크고, 일본과 호주에 비해서 굉장히 상황이 안 좋다. 그렇기 때문에 (미국이 한국을) 일본, 호주와 다르게 취급해야 한다”고요. 그럼 제가 뭐라 하느냐. ‘그렇게 얘기하는 것과 동맹으로서 다 할 준비가 돼있다고 얘기하는 것 중에 어떤 게 신뢰에 더 도움되겠느냐’고 묻습니다. 그래서 ‘두 노 함’이 굉장히 중요합니다.
모든 걸 동맹에 기초해서 한다는 것은 각각 개별 사안을 미국을 설득해 피해나가는 것보다 좋은 방법을 만들어낼 수 있습니다. 아시아 인프라 은행 건도 얼마든지, ‘전략적 명백성’을 기초로 해서도 미국 정부 당국자들과 얼굴 붉히지 않고 합의를 이끌어낼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처음부터 ‘우린 다르게 취급해줘’라고 미국에 그러는 건, 제가 볼 때 동맹의 기본 속성 이해가 부족한 상황에서 하는 얘기라고 생각합니다.
● “북 비핵화 해법 질문에 ‘한미 동맹 강화’ 답변한 매케인…지금도 통용되는 ‘정답'”
Q. 문재인 대통령이 정의용 전 청와대 안보실장을 외교부 장관 후보자로 지명했습니다. “문재인 정부의 외교 결실을 매듭짓고 한반도 평화프로세스를 잘 뿌리내리도록 최선을 다하겠다”, 이게 정의용 후보자의 첫 일성이었습니다. 사실상 북미 대화 추동을 본인의 사명으로 여기고 장관직에 임하시는 것 같은데요. 반면, 바이든 행정부에서 나오는 얘기들을 보면, 대북 정책과 관련해서는 동맹국인 한국 등과 함께 협의를 해 나갈 텐데 전면적으로 대북 정책을 검토하겠다는 인상입니다. 한국 정부가 동맹에, 말하자면 기분 나쁘지 않게 어떻게 설득을 해나가야 한다고 보는지 궁금합니다.
A. 현안에 대해선 구체적으로 말씀드리기 조심스러운데요. 아까 질문하면서 비핵화하고 동맹을 말씀했잖아요. 제가 일화를 하나 소개할게요. 존 매케인 상원의원이 있습니다. 제가 미 상원의원들을 많이 만났지만, 동맹에 관한 한 매케인 의원처럼 동맹의 중요성 잘 인식하는 분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분과 워싱턴에서 자주 만났는데, 그분이 돌아가셨을 때 굉장히 섭섭했어요.
지난 2016년 가을, 제 생각엔 북한 비핵화 과정에서 대단히 중요한 시기였습니다. 당시 매케인 의원이 그 해 9월에 헤리티지파운데이션에서 동아시아의 동맹과 어떻게 관계를 맺어갈지를 주제로 한 연설을 하게 됐습니다. 근데 거기에서 질문이 나왔습니다. ‘지금 북한이 계속 핵 미사일 실험을 하는데, 관계 개선을 이루지 못하지 않겠느냐. 뭘 더해야 하느냐’는 질문이었습니다. 그래서 저도 매케인 의원이 어떻게 답할지를 궁금해했는데요. 당시 매케인 의원은 이렇게 답했습니다. “무엇보다도 중요한 게 있다. 한미 동맹을 더 강화해야 한다”고 답했습니다. 그래서 제가 그 답변을 듣고 ‘가만있어보자. 저건 꼭 문제를 해결하는 답은 아닌 것 같고, 피해 가는 답변 같은데. 왜 안보에 대해 ‘9단’인 양반이 왜 저렇게 답을 했을까’ 생각했습니다.
그리고서 그 답변의 의미를 곰곰이 생각해봤습니다. 북핵은 굉장히 중요한 도전이죠. NPT 체제에 대한 도전이고, 미국의 실질적인 안보에 대한 도전이고, 미 동맹국인 한국과 일본에 대한 도전입니다. 그 도전을 제대로 방어하고 제대로 해결하기 위해서는 동맹이 중요한데, 또 그것보다 더 중요한 건 이 과정에서 동맹이 적이 돼선 안 되겠다는 의미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그 당시에 답변을 들었을 때보다 나중에 그 생각을 곰곰이 하면 할수록 ‘역시 9단 다운 답변이었다’고 생각했습니다. 방금 김 기자가 준 질문에 대한 답변으로, 현안에 대해서는 조심스럽습니다만 그 에피소드를 공유하고 싶습니다.